도화녀 비형랑
작성일 13-01-24 12:47 조회수 1,478
표지

<책 소개>
 
남편을 잃은 아름다운 여인에게 찾아오는 낯선 손님!!
다시 전설이 시작된다!!
 
국내 최대 시나리오 공모전 당선작 ‘자귀모’와 ‘천년호’의 작가 홍주리가 시나리오가 아닌 장편소설로 돌아왔다. 홍주리는 ‘자귀모’와 ‘천년호’ 작업 이후 삶의 의미와 진실을 찾아 정신적인 방황을 하기 시작했고 인문학 공부와 대학 강사활동에 집중했다.
하지만 글쓰기가 그녀의 천직임을 깨달고 다시 글쓰기에 매진하여 그간 몇몇 소설을 창작했다. 그리고 그 소설들 중 그녀가 가장 아끼는 ‘도화녀 비형랑’을 첫 장편소설로 내 놓았다.
‘도화녀 비형랑’은 ‘삼국유사’에 실린 설화 ‘도화녀와 비형랑’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지독한 사랑과 가슴 아픈 가족사를 세련된 판타지로 풀어낸 작품이다.
두 주인공인 현중과 여주는 결코 사랑해서는 안 될 쌍둥이 남매라는 사실마저 그들에게는 ‘만나지 않으면 안 될 운명’의 상징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 여인의 처절한 모성애 앞에 이들의 운명은 엇갈리기 시작한다.
오래된 설화를 현대적 감각과 판타지로 재해석 했다는 점에서 이 소설의 독특함을 찾을 수 있다. 또한 시나리오 작가 출신답게 영화를 보는 듯한 생생한 묘사와 치밀한 전개, 거듭되는 반전이 돋보인다. ‘식스 센스’ , ‘디 아더스’와 같은 영화에 열광했던 이들이라면 꼭 봐야 최고의 반전작이다.
 
 
<목차>
 
프롤로그 - 어느 낡아빠진 다락방
 
1 쌍둥이 남매의 발칙한 사랑
2 13년 후
3 돌아오다
4 강요된 선택
5 현중의 결혼
6 위험한 수술
7 청옥 여사의 치명적 실수
8 아이의 목소리
9 바닷가의 세 사람
10 청옥 여사의 반격
11 한밤의 살인
12 두 번째 아이
13 낡은 포드 자동차
14 죽은 자의 귀환
15 ‘왕’과의 하룻밤
16 비밀
17 아이, 태어나다
18 보이지 않는 남자
19 쌍둥이 남매의 공격
20 두려운 진실
21 엄마와 딸
 
에필로그
 
 
<저자소개>
 
홍주리
 
22세에 삼성영상사업단과 조선일보가 공동주최하고 시네마서비스가 주관했던 국내 최대 규모의 시나리오 공모전 `우리 영화 시나리오 공모' 에서 「자귀모」로 대상에 선정됐다.
<자귀모>이후 <천년호> 등 몇 편의 영화 시나리오를 썼다.
이후 삶의 의미와 진실을 찾아 정신적 방황을 하며, 대학원에서 인문학을 공부하고, 짧은 교사 생활과 대학 강사로 활동하기도 했으나, 글쓰기만이 자신의 길임을 깨닫고 칩거, 현재 창작 활동에 매진 중이다.
 
 
<본문내용>
 
선형은 울고 있지 않았다. 그런 건 선형에겐 어울리지 않았다. 하지만 선형이 눈물을 참을 때면 언제나 그랬듯이, 온몸을 부들부들 떨면서도 이를 악물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뭔가가 텅 비어버린 여자처럼, 40은 먹어버린 여자처럼 텅 빈 시선으로 이렇게 중얼거렸을 뿐.
“처음부터 쓰레기로 태어나는 건 없어. 버려지면, 그걸로 쓰레기인 거야. 쓰레기는 나를 왜 버렸냐고 물을 수도 없어. 쓰레기니까.”
- (본문 18p)

1층, 2층, 3층. 그러나 불빛은 이내 꺼져버린다, 그런 미련 따위 부질없다는 현중의 체념과 함께. 아니, 그래도 한 번만 더. 현중의 마음속에서 다시 한 번 불이 켜진다. 1층, 2층, 3층 … 아니, 잠깐! 저 불빛은 진짜다. 너무도 연약한, 웬만해서는 알아볼 수 없는 작은 불빛이 별장에서 새어 나오고 있다! 마치 한 번은 이곳에 들러달라는 망자의 귓속말처럼, 아주 작게, 그러나 분명히.
- (본문 41p)

“그래서, 엄마는 어떤 돌을 집을 건데요?”
엄마는 어린 딸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딸의 키 높이에 맞춰 키를 낮췄다. 드디어 엄마에게 뭔가 대답을, 그러니까 어떤 반응을 얻어낼 수 있으리라 기대하면서도, 그런 감정을 들키지 않으려 더 세게 입술을 깨물었다. 그런데 엄마는 혐오스러운 시선으로 나직이 말했다.
“적어도 네가 집는 돌은 집지 않을 거다.”
그날이었던 것 같다, 처음으로 엄마의 사진을 찢었던 것은.
- (본문 106p)

“날 그렇게 부르지 마! 살인자, 이 더러운 살인자!”
짐승처럼 울부짖는 여주의 눈이 점차 광기로 번뜩이는가 싶더니, 뭔가에 씐 듯 선형의 차에 올랐다. 어느새 차 앞까지 달려온 현중이 차 문을 열기 위해 왼쪽으로 몸을 꺾었다. 바로 그 순간, 여주의 발이 가속 페달을 사정없이 밟았다. 쿵! 쿵! 쿵! 현중의 몸이 붕 뜨는가 싶더니 경사진 모래사장 아래를 굴러 철퍼덕 바닷물로 떨어졌다. 어둠 속이라 확인할 수는 없지만, 즉사했을 게 분명한 현중의 몸은 반 이상 물에 잠겨있을 터였다.
“죽어, 죽어, 죽어! 이 나쁜 새끼야!”
- (본문 137p)

여주의 눈에서 긴 눈물이 흘러내렸다. 시어머니가 살인의 이유를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현중과 선형이 바닷가에서 나눈 진한 애정 행각을 과연 입 밖으로 꺼낼 수 있을까? 차가운 바닷바람을 맞으며, 여주의 정신은 오히려 또렷해졌다. 내가 그 사람을 조금 덜 사랑했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거야. 그게 실수든 아니든 아이가 현중의 손에서 죽었는데도 현중을 믿고 새로운 시작을 꿈꿀 만큼 현중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 (본문 141p)

“난 그 아이가 우리 조카라고 생각하지 않아. 그 아이가 태어나서, 글쎄, 그게 가능하다면 말이지만, 그 애가 온 집안을 휘젓도록 두고 보지 않을 거야.”
아이가 태어나서 온 집안을 휘젓도록 두고 보지 않는다고…? 잠시 선형의 말을 곱씹던 여주는 그 말이 의미하는 것을 깨닫고 하얗게 질렸다. 어느새 선형은 여주의 배를 골똘히 쳐다보며, 곧이라도 여주의 다리를 벌려 아이를 꺼내기라도 할 듯, 무시무시한 기세로 다가왔다. 그 순간, 아이 역시 불안을 느끼는 듯, 여주의 뱃속에서 심한 발길질을 해댔다.
“당신은 악마야…!”
- (본문 173p)

‘송여주’가 적힌 페이지와 ‘이현중’이 적힌 페이지, 그리고 다른 한 페이지를 제외하고 모든 페이지들은 테이프로 봉쇄되어 있었다. 현중은 역시 현중이었다. 여주를 위해 기껏 준비한 이벤트조차 마무리하지 못하고, 약간의 냉대에 금세 나가떨어져 버리다니. 여주는 쓴웃음을 지으며, <전화번호부>를 바라보았다. 별생각 없이 ‘송여주’와 ‘이현중’ 사이의 페이지를 열어본 여주는 입으로 손을 가져갔다. 가슴에 덩어리 같은 것이 올라오며, 눈물이 떨어졌다. ‘송여주’와 ‘이현중’ 사이의 페이지에는 ‘이처음’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처음이’, 그것은 첫 아기의 태명이었다.
- (본문 189p)